노혜경 칼럼




낭만기차는 달려간다

북-미 정상회담을 위해 북측의 김정은 위원장이 “평양에서 하노이까지 육로로 간다”는 소식을 듣자 갑자기 머릿속이 극장이 되었다. 과거에서 미래까지의 동아시아.

나혜석은 기차를 타고 파리까지 갔고 김단야도 기차를 타고 모스크바로 갔다. <압록강은 흐른다>를 쓴 이미륵은 상해까지 기차로 가서 기선을 탔고, 파리강화회의 대표 김규식도 상해에서 기선을 탔다. 이들이 간 길 어디쯤까지는 겹쳐 있을 하노이행 철도의 이미지가 제일 먼저 불러오는 것이 내게는 사람들의 이름이다.

20세기 초 중국 대륙을 무대로 전세계를 향해 대한민국 독립을 외치던 분들이 있었지만, 우리의 기억은 어디쯤에선가 철도가 끊어지듯 막혀 있다. 약산 김원봉이라는 이름을 영화 <암살> 이전에 알고 있던 사람은 드물었고, 영화 <말모이>에 김두봉이 등장하겠지 하고 기대했다가 실망한 사람도 많지 않을 것이다. 모르니까.

그나마 문학계 사정은 나은 편이라, 1988년 이후 많은 북측 문인들이 해금되어 정지용·백석·오장환·이용악 등은 나름 팬덤을 거느린 인기 시인이고, 임화는 심지어 그리운 이름이며, 이태준·박태원의 일제강점기 소설들도 필독서로 대접받고는 있다. 딱 이 정도까지다. 서정주가, 김기창이 “해방이 도둑같이 왔다”고 변명하면서 해방 대한민국의 가장 중요한 예술가 대접을 받는 동안 그 해방을 준비한 사람들은 잊혔다. 미국과 소련이 나라를 동강낸 것만 알지 건국준비위원회가 그토록 단시간에 결성될 수 있었던 저력이 어디에서 왔는지는 모른다. 3·1항쟁 100주년이라면서도 그 100년의 첫 시기를 두텁게 채운 이들을 모른다. 몽양 여운형이 누구인지 모르고 죽산 조봉암이 누구인지도 모른다. 갑오에서 기미까지 3·1운동의 물밑을 흐르는 갑오농민전쟁의 정신을 박태원이 빼어나게 형상화했다는 사실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니 북한의 국가를 작사한 박세영이란 시인이 있다는 것을 알 리가 없고 이쾌대라는 걸출한 화가는 몰라서 좋아할 수가 없다. 알려고 노력을 안 해서라기보다는 우리의 상상력이 ― 다시 말하자 ― 어디쯤에선가 철도가 끊어지듯 막혀 있어서다.

앞에서부터 열거한 이름들 중 제대로 유명하고 제대로 평가된 이름이 얼마나 있을까. 심지어 다 부르지도 못했다. “하노이까지 기차로”를 기획한 북측 사람들이 설마 남쪽의 한 시인에게 이런 감회를 안기려고 했겠는가만, 나라를 빼앗긴 설움에 머물지 않고 대륙을 누비며 우리의 네이션(민족국가)을 이룩하고자 골몰했던 사람들의 이름이 한꺼번에 몰려와 기분이 참 복잡해진다. 아, 그 철도 어디쯤에는 <아리랑>의 김산이 타고 내린 역도 있지 않을까?

과거가 차근차근 복원되는 이 느낌은, 발목이 동강나 쓰지 못하던 다리에 다시 피가 돌고 근육이 붙고 내 힘으로 일어서서 걸을 수 있게 되었을 때의 느낌이다. 나는 이렇게 많은 것을 이미 가졌구나. 만주국환상곡을 여러 번 우려먹고 자기표절한 안익태 곡 자칭 애국가를 안 불러도 될 만큼 가졌구나. 몰라서 그렇지.
비행기가 아니라 기차로, 다른 말로 철도로 간다는 말이 주는 또 하나의 상징은 육지의 핏줄이다. 이어져 있다는 느낌이다. 동북아 허브를 구상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이 유라시아 철도다. 그런데 그 철도가 시베리아만이 아니라 남방을 향해 뻗어 있고, 하노이를 향해, 호찌민을 향해, 캘커타와 델리를 거쳐 이스탄불까지도 갈 수 있다는 사실, 오리엔탈 특급을 타고 로잔과 바르샤바까지 갈 수 있다는, 평양과 하노이가 평양과 서울보다 더 이어져 있다는 그 느낌은 남한이 고립되어 있었다는 실감으로 이어진다. 봉쇄를 탈출해야 하는 것은 북한이지만, 그 못지않게 남한도 대륙으로부터 고립되어 있음을 탈출해야 한다는 실감. 단지 철도로 간다라는 한마디가 열어주는 인식의 지평은 넓다. 서울에서 평양까지 철도를 놓는다는 말이 지닌 이 원대한 의미. 우물 안 개구리는 우물 밖으로 나가면 왕자가 되지.

도시에서 도시로 가는 시간을 최대한 단축하는 것은 현대적 비즈니스의 필수조건이다. 먼거리 기차여행이란 그런 뜻에서 매력 없는 일일 수도 있다. 그러나 비행기는 점과 점을 잇고 철도는 면과 면을 잇는다는 기본상징은 변하지 않는다. 하노이로의 기차여행은 북-미 정상회담 성과와 무관하게 미래를 바라보는 새로운 상상력을 제공해준다. 꼭대기에서 꼭대기로의 이동과 협상이 아니라 길가의 촘촘한 집과 사람들을 만나고 교류하는 생활이야말로 꿈에 그려 마땅한 내일이라는 것을.
꿈꾸어본다. 북한 시인 렴형미가 기차를 타고 서울로 와서 강연을 하는 꿈. 거기서 사회를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