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흥주의 시사칼럼



민주주의 가 이렇게 붕괴되고 있다

민주주의는 차선(次善)이라는 말이 있다. 굳이 차선을 선택하는 것은 최선(最善)에 내재하여 있는 위험, 특히 독재를 피하기 위해서다. 이는 인류가 오랫동안 시행착오를 거듭하면서 터득한 일종의 지혜이자 경험칙이다. 다수의 판단이 비록 우매하고 소수에겐 횡포로 인식될지 몰라도 적어도 최악의 사태는 면하게 해줄 것이라는 희망 사항이기도 하다.

1973년 9월 11일 정오, 칠레 산티아고 중심에 있는 대통령관저인 모네다궁전이 전투기로부터 폭격을 당했다. 3년 전 진보연합의 대표로 대통령에 선출된 아옌데 대통령은 임기 동안 사회불안, 경제위기, 정치마비로 통치권이 홍역을 앓고 있었다. 폭격이 있고 나서 피노체트 군 총사령관이 이끄는 군부쿠데타로 칠레 민주주의는 막을 내렸다.

칠레 사례처럼 민주주의가 물리적 힘에 의해 무너지는 경우는 요즈음 거의 사라졌다. 하지만 국민이 선출한 통치자의 손에 의한 민주주의 붕괴가 성행하고 있다. 선거를 통한 민주적 절차를 그쳐 당선된 대통령이나 총리가 권좌에 오르자마자 민주적 절차를 해체해버리기 때문이다.

베네수엘라, 헝가리, 니카라과, 페루, 폴란드, 러시아, 스리랑카, 터키, 우크라이나 등 여러 나라 에서 선거로 추대된 통치자들이 민주주의 제도를 무너뜨렸다. 이 때문에 오늘날 민주주의 붕괴는 투표장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개탄하는 사람들이 많다.

‘어떻게 민주주의가 무너지는가(How Democracies Die)’의 저자 스티븐 레비츠키, 대니얼 지블랫은 선출된 잠재적 독재자들이 민주주의를 전복하는 데는 비슷한 전략을 구사한다고 했다. 이들은 민주주의 정치제도를 무기로 삼아 마음껏 권력을 휘두르면서 사법부를 비롯한 중립기관들을 자신 의 입맛대로 바꾸거나 활용한다는 것이다. 언론과 민간 영역을 매수,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도록 하고 정치게임 규칙을 바꿔서 경쟁자에게 불리하게 운동장을 기울인다고 했다. 선거를 통해 권력 을 장악한 독재자의 시나리오에서 가장 비극적인 역설은 그가 민주주의 제도를 미묘하고 점진적 으로, 그리고 합법적으로 활용함으로써 민주주의를 죽인다는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영국 국민의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 결정에 대한 반응도 민주주의의 위기를 잘 보여준다. 영국 내의 도드라진 분위기는 어떻게든 투표결과를 뒤집어보겠다는 것이다. 일부 국회의원들은 국회가 국민의 목소리를 무시할 권리가 있다고 당당히 말한다. 바다 건너 유럽의회의 마틴 슐츠 의장은 “군중들이 자신의 운명을 결정한다는 것은 EU의 철학이 아니다”고 조롱했다. 유럽의 주류 언론들도 국민투표는 인종차별주의의 발현에 불과하므로 무시해도 좋다고 공공연히 주장한다. 영국 국민이 어림없는 객기를 부린 것인가. 영국 국민은 그런 엄청난 정치적 선택을 할 자격도 능력도 없다는 것인가.

하기야 남의 나라 민주주의를 탓할 때가 아니다. 우리 조국 대한민국도 문제 덩어리가, 이들의 민주주의 붕괴 진단은 문재인정부의 일방통행식 정치를 상기시킨다. 대통령의 지지율 급락하고 있으니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 같다. 대통령이 입법부와 사법부 위에 군림, 제왕적 대통령으로 비춰져 ‘공화국 대한민국’이 위기에 처했다고 염려하는 국민이 늘어나고 있다. 5년 시한부로 주어진 제도적 권리를 무소불위로 휘두르고 싶은 유혹에서 벗어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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