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동 원로목사의 칼럼] 그리스도인의 긍정 마인드


그리스도인의 긍정 마인드

빌립보서 4:13은 믿는 자들뿐만 아니라 믿지 않는 자들에게도 널리 알려져 있고 또 자주 인용되는 말씀입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그러나 이 구절은 앞뒤 문맥을 고려하지 않고 이 한 구절만 달랑 놓고 생각하면 자칫 잘못된 신앙으로 치달을 수 있기 때문에 조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구절을 문맥을 무시한 채 신앙과는 무관하게 인본적인 차원에서 잘못 적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Yes, I Can.”이라는 말이 마치 이 성경구절의 본래 의미인 양 널리 애용되고 있습니다.

이 구절을 이해하려면 먼저 앞뒤 문맥을 살필 필요가 있습니다.
(빌립보서 4:10) “내가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함은 너희가 나를 생각하던 것이 이제 다시 싹이
남이니 너희가 또한 이를 위하여 생각은 하였으나 기회가 없었느니라.”
빌립보 교회 성도들이 바울의 사역에 재정적 지원을 하려는 것에 대해 기뻐하고 감사하는 바울 자신의 심경을 토로하고 있습니다. 그 동안도 빌립보 교회 성도들이 마음은 있었으나 이런저런 사정으로 기회가 닿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어떻게 기회가 닿아서 재정적인 후원을 해줄 수 있게 되어 참으로 기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칫 빌립보 성도들이 마치 사도 바울에 대하여 물질을 탐하는 자로 오해할 소지가 다분하기 때문에 바울은 왜 기뻐하는지 그 이유를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빌립보서 4:11-12)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바울은 빌립보교회 성도들이 감옥에 갇혀있는 자기를 재정적으로 도와주는 것을 생각할 때 매우 흐뭇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기뻐하는 것은 지금 자신이 경제적으로 쪼들리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자기를 주의 종으로 알고 도울 마음을 가진 걸 보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변치 않은 것 같아 마음이 기쁘다는 뜻입니다. 감옥에 갇혀 있는 상황이다 보니 경제적으로 궁핍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겠지만, 사도 바울은 가난하든 부하든, 배부르든 배고프든, 어떤 상황에서든 스스로 만족할 줄 아는 자족의 비결을 터득했노라고 간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곧장 13절 말씀이 이어집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이 말씀을 문맥을 따라 해석하자면 이런 의미가 될 것입니다.
“내게 능력을 주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나는 어떠한 형편에서도 잘 적응하면서 참고 견디며 신앙적으로 승리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이것은 Doing이 아니라 Being에 관한 말씀입니다. 마음의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지 어떤 행동을 의미하는 게 아닙니다.

환경에 적응하는 것과 관련해 두 가지 유형의 인간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온도계와 같은 유형의 사람이 있고, 온도조절기와 같은 유형의 사람이 있습니다. 온도계는 날씨가 추우면 내려가고 더우면 올라갑니다. 이런 사람은 환경에 따라 신앙생활이 오르락내리락합니다. 그런데 온도조절기는 날씨에 영향을 받지 않고 오히려 온도를 조절합니다. 온도조절기에 따라 실내 온도가 달라집니다. 온도조절기와 같은 사람은 환경에 지배당하는 삶이 아니라 환경을 지배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크리스천은 온도계와 같은 삶이 아니라 온도조절기와 같은 삶을 살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온도조절기와 같은 삶을 사신 분입니다. 그는 환경에 휘둘리지 않고 오히려 환경을 극복하는 삶의 모범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감옥에 갇혀있는 상황에서도 기뻐하라고 권면하는 절대긍정의 사람입니다. 그가 강조하고 있는 신앙은 ‘내가 할 수 있다’가 아니라 ‘나는 능력이 없지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내게 능력을 주시니 그 분의 능력을 힘입어 나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의미의 긍정 마인드입니다. 바울은 어떤 상황에서도 긍정적인 사고를 하는 참으로 훌륭한 마음의 습관을 가진 분이었습니다. 우리가 어떤 마음과 사고의 습관을 가지느냐 하는 것이 인생의 성패를 좌우합니다. 평소 긍정적인 사고에 길들여져 있는 자들은 인생에서 성공할 확률이 높습니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늘 부정적인 사고에 길들여져 있는 자들은 인생에서 패배할 확률이 높습니다.

버나드 쇼가 한 말로 전해지고 있는데, 물이 반쯤 찬 컵을 보고 낙관주의자는 ‘아직도 물이
반이나 남았네.’라고 말하는 반면 비관주의자는 ‘이제 물이 반밖에 안 남았네.’라고 말한다는 것입니다. 꼭 같은 벌 한 마리를 보고서도 낙관주의자는 꿀을 만들어주는 참 이로운 곤충이라고 말하고, 비관주의자는 사람을 쏘는 해로운 곤충이라고 말합니다. 모든 일에는 양면성이 있게 마련입니다. 때로 비관주의자들의 말에도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왕이면 좋은 쪽으로 생각하는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사고의 습관을 기를 때 우리의 삶은 그만큼 풍성해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신의학자 칼 메닝거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사실보다는 태도가 중요하다.”(Attitude is more important than fact.)

발명왕 에디슨은 매우 긍정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백열전구를 발명하기까지 770번의 실패를 거듭했지만, 실패할 때마다 그것을 실패로 여기지 않고 성공할 수 없는 한 가지 방법을 알게 되었다고 생각하곤 했습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이 바로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닌가 싶습니다. 꼭 같은 실패를 경험하면서도 짜증스러워하고 좌절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에디슨처럼 그 실패를 딛고 성공을 향해 한 걸음 전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사고를 심는가 하는 것에 따라 거두는 열매가 결정됩니다. 적극적인 사고방식의 주창자인 나폴레옹 힐이 한 말이 자주 인용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생각을 심으면 행동을 거두고, 행동을 심으면 습관을 거두고, 습관을 심으면 인격을 거두고, 인격을 심으면 운명을 거둔다.”
모든 것의 출발점은 생각입니다. 생각의 물꼬를 어느 방향으로 트느냐에 따라 우리의 운명이 결정됩니다. 동일한 상황에 처해 있지만 그 상황을 어떻게 보고 해석하느냐가 중요합니다. 꼭 같은 돌을 보면서도 걸림돌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디딤돌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무엇’을 보느냐 하는 것보다 ‘어떻게’ 보느냐 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잠언 23:7) “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즉”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는 것이 바로 그 사람의 됨됨이를 결정짓는다는 뜻입니다. 꼭 같은 객관적인 사실에 대해 그 사실을 어떻게 주관적으로 받아들이고 해석하느냐에 따라 생각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은 사건들 그 자체보다는 그 사건들에 대한 해석으로 점철되어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입니다.

긍정적인 사람은 고난과 역경까지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입니다. 우리 인생에 밀려오는 저항이 달가울 턱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저항이 없으면 우리의 삶에 발전의 기회가 없습니다. 공기의 저항이 없으면 독수리는 날아오를 수 없고, 물의 저항이 없으면 배가 뜰 수 없고, 바람이 불지 않으면 돛단배는 전진할 수 없습니다. 우리를 짓누르는 지구의 중력이 없다면 우리는 뒤뚱거리며 똑 바로 걸을 수가 없습니다. 새에게 날개는 거추장스럽지만 그러나 날개가 있기에 높이 날 수 있는 것입니다. 고난 그 자체는 결코 유쾌한 것이 아니지만 그 고난의 배후에 감춰진 소위 ‘위장된 축복’을 보는 안목이 있다면 고난도 유익한 것입니다.

사실 긍정적인 사고, 적극적인 사고는 하나님께 대한 믿음에서 나온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는 부정적인 것이나 비관적인 것이 전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신뢰가 강할수록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긍정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최대의 부정이지만, 그 분의 부활은 최대의 긍정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신앙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참 믿음이 있는 크리스천이라면 마땅히 긍정 마인드의 소유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