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문기 회장, 5전6기 오뚜기 인생] 5번째 간암수술 후에도 왕성한 활동

인터넷 검색창에서 남문기를 치면 세계 어느 유명인사 못지않는 그에 대한 정보들이 끝없이 주루륵 뜬다.

그의 이력서만 봐도 입이 벌어질 정도로 길다. 웬만한 사람들의 이력서가 길어야 3장인데 반해 무려 12페이지, 2967단어로 구성됐다는 기사도 나온적이 있다. 적어도 750만 재외동포 중에 이력서가 가장 긴 사람은 아마도 그가 아닐까 싶다. 이력서가 길다는 것을 두고 내세우기 좋아하는 사람으로 치부해버릴 수도 있겠지만 그는 실제로 그렇게 자신의 성공과 동포사회 발전을 위해 부단한 노력과 열정을 가지고 살아 왔다.

인터넷 상에 떠도는 그가 살아 온 여정을 훑어보면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불가능을 모르는 사나이”라는 별명답게 그의 성공사례는 2000년도에 KBS 에서 방영된“한민족 리포트”프로에 “300불로 이룬 남문기의 아메리칸 드림”이 1시간 소개 되면서 처음 알려졌고, 그 후에 KBS 아침마당을 포함해서 MBC, SBS,YTN,MBN,월간조선, 신동아 등 국내외 언론에 500번 이상 등장하면서 잘 알려져 있다.

그리고 재외동포들의 권익을 위해 헌신해 온 발자취는 그동안 그가 봉사했던 단체 리스트만 봐도 확연히 알 수 있다. 해외 한민족 대표자 협의회 공동의장,로스앤젤레스 직선 한인회장(28대), 미주 한인회 총연합회 총회장(제 23대), 미주한인상공인 총연합회 총회장(21대), 세계 한인회장대회 공동의장 역임, 미주동포후원재단 이사장, 한미친선연합회 총재 등 20여개의 크고 굵직한 단체장을 역임했다. 이는 한 사람이 자신의 사업을 일구면서 어떻게 이런 많은 봉사를 자신의 당대에 다 할 수 있는지 믿기지 않을 정도이다.

“해외에 나가있는 한국인들을 한국 사회에 동화시키고 한국을 위해 살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면서 재외동포들의 참정권과 복수국적 취득을 위해 동분서주하던 모습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그리고 한국 입국심사시 미 시민권자는 한국인임에도 불구하고 외국인 라인에 서야만했던 제도를 바꾸어 일반 내국인 라인에서도 입국심사를 받게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런 그가 지난 8월 “한국인의 노벨상” 이라고 불리우는 미주동포후원재단에서 주관하는 자랑스런 한국인상을 수상한 이후로 잠시 자,취를 감추었는데, 그는 “지난 10월20일경 한국에서 5번째 간암수술을 했다”고 하면서 “이제 회복하여 설악산 대청봉에 올라왔다”는 인정샷을 찍어서 11월13일자로 페이스북에 올려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5번에 걸친 간암수술? 그는 오뚜기처럼 다시 일어나 걸었다>

그는 2002년 간경화 말기 진단을 받고 2012년 1차 간암 수술을 받았다. 3개월 시한부 삶이라는 진단이었지만 보란듯이 암과 싸워 이긴 그는 “아직 할 일이 더 있어서 안 간 것 같다”고 하면서 더욱 왕성한 활동을 펼쳐 왔지만 암은 그를 쉽사리 놓아주지 않았다. 그는 2012년 12월 두번째,2017년4월 세번째,그리고 올 해만 두번에 걸쳐 수술을 한 것이다.

“몸무게 줄이니 골프가 잘 맞네요” , “슬퍼할 것도 불안해 할 것도 없는 것이 인생이랍니다. 인생은 다 그렇게 그렇게 가는 것이라고…슬퍼한다고 해결되면 죽자사자 슬퍼하겠노라고. 어제는 어제고 오늘은 또 오늘이니까”. 마치 어느 도승처럼 선문답을 하며 오늘도 앞만 바라보고 전진하는 그의 모습은 우리 이민 후세들에게 전하는 메세지가 크다.

1982년 1월, 안정된 직장을 과감하게 버리고 천운의 꿈을 안은채 미국 땅을 밟았을 때 가지고 있었던 돈은 전부 300달러. 이것을 종자돈으로 부동산학교와 장학재단, 광고기획사, IT회사, 투자그룹, 매니지먼트, 에스크로 컴퍼니 등의 계열사와 30여 개 지사에 본사 직원 80여 명을 포함해 1000여 명을 거느리고 년 수조 원 대의 매출규모를 이루는 뉴스타 부동산 왕국을 세운 그는 “나는 여전히 성공에 목마르다”고 한다. 비록 몸은 암과 처절한 싸움을 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한국 해병대(제266기)출신인 그는 성공의 밑그름으로 항상 싸우면 이기고,귀신도 잡는 다는 강인한 해병정신이다고 말한다.아마 암과의 싸움에서도 오뚜기 처럼 다시 일어날 수 있었던 것도 해병정신이 있기 때문이 아닌가 짐작해본다.

이렇게 성공한 그이지만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잊지않고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고 있다.
2001년 개인적으로 시작해 2003년 뉴스타 장학재단으로 확대했다, 올해로 총 1390명에 130만 달러를 지급했다. 지난 5월엔 모교인 건국대에 10만 달러를 쾌척하기도 했다.뿐만아니라 조국과 동포사회의 이익을 위해 열심히 헌신하는 웬만한 단체에 그는 후원금을 아끼지 않고 있다.

이러한 공로로 2009년에는 720만 해외한인들의 발전에 기여함에 건국대학교에서 명예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또한 지난 16년간 250만 미주동포들에게 “남문기성공학강의”를 통해 한인 커뮤니티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뉴욕조수아 유니버시티 명예교육학 박사학위를,그리고 월드 트리니티 대학교에서 명예 철학박사 학위을 취득하기도 했다.

그는 지금까지 총 6권의 책을 저서했는데 그중 “나는 여전히 성공에 목마르다”는 그의 힘든 이민생활과 뉴스타 부동산 왕국을 세우기까지의 여러가지 사건과 시련을 극복한 사례들을 속 시원히 볼 수 있는 책으로 원대한 꿈을 품고 이민생활를 시작하는 후진들에게 길라잡이 역할을 하는 책으로 잘 알려져 있다.

항상 호탕한 웃음으로 상대로 하여금 긴장을 풀게하고, 항상 셈세한 배려가 묻어나는 그와의 만남은 누구에게나 편안함을 제공한다.그것이 그의 성공 비결이다. 기나긴 암투병중에서도 활기찬 생활 모습이 담긴 글을 사진과 함께 페이스북에 올리며, 삶과 죽음을 초월한 듯한 어록으로 우리에게 잔잔한 감동과 희망을 전하고 있는 남문기 회장이다. “창업자는 은퇴가 없습니다. 계속 전진할 겁니다.”라는 그의 말처럼 LA시 8가와 버몬트 애비뉴에 있는 두 개의 본사 건물에서 건강하고 활기차게 일하는 그의 모습을 다시 보게되길 희망한다.

워싱턴코리안뉴스 강남중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