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탄핵2년,지금도 탄핵사유가 있다고 보는가]

채명성 변호사

‘월간 대한언론 3월호’ 에 실린 채명성 변호사 기고문 전문(全文)

2017년 3월 10일 대통령 파면 결정. 그리고 2년이 지났다. 그 동안 많은 사실이 드러났다. 탄핵 당시부터 ‘킹크랩’을 사용해 여론을 조작한 혐의로 김경수 경남도지사와 드루킹에 대해 유죄가 선고되었다. 박지원 의원은 ‘김무성 의원이 40표를 모으면서 탄핵소추 논의가 본격화되었다’고 밝혔다. 정치적 뒷거래로 대통령을 탄핵소추했고 정파적 이익을 위해 여론을 조작했던 것이다.

이후 많은 일들이 있었다. 대통령은 탄핵되었고 정권은 교체되었다. 전직 대통령 2명이 구속되어 재판을 받고 있다. 적폐청산을 명목으로 한 인적청산은 국정원, 군, 검찰, 언론에 이어 법원에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 과정에서 국정원 소속 정치호 변호사와 변창훈 검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최근에는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이 투신 사망했다. 이념 대립은 이전보다 더욱 격화되었다. 이 모든 일들이 2년 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이제 물어보고 싶다. 2016년 겨울 왜 그렇게 분노했고, 거리로 나와 촛불을 들었나. 과연 지금도 대통령을 탄핵시킬 사유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당시 대통령이 사교에 빠진 최서원의 아바타라는 분노와 실망감, 대통령이 세월호 7시간 동안 섹스나 하고 굿판을 벌이는 더러운 여자였다는 충격 때문에 탄핵에 찬성한 것은 아니었나. 그 모두가 거짓으로 밝혀졌지만 대통령은 탄핵되었고, 구속되었다.

우상호 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2016년 8월 중순부터 조응천, 손혜원, 도종환 의원 등과 비공개로 ‘최순실 TF’를 꾸렸다고 밝혔다. 박근혜 정부에서 공직기강비서관을 지낸 조응천 의원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소주 ‘처음처럼’을 네이밍한 광고전문가 손혜원 의원과 ‘접시꽃 당신’을 쓴 시인 도종환 의원이 TF 주요 멤버였다는 사실은 중요한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박정자 교수는 이를 두고 ‘섹스와 샤머니즘’이라는 두 개의 키워드로 지탱된 기획에 ‘기획자 없는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라는 고도의 내러티브까지 포함시킨 기획자가 드러났다고 평가했다. 손혜원 의원의 자신만만함은 이 정권을 근원에서부터 만든 일등공신이라는 사실에서 나온다고도 했다. 여기에 드루킹의 댓글공작까지 가세한 것이다.

‘최순실 TF’의 활약 때문이었는지 국회가 대통령을 탄핵소추하기까지 몇 달간 언론에서는 온통 검증되지 않은 오보들을 쏟아냈고 어느 순간 누구도 대통령이 부정한 여자라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 시점에 JTBC의 태블릿 PC 보도가 나왔다. JTBC조차 첫 보도시에는 ‘태블릿 PC’라고 차마 말하지 못하고 ‘컴퓨터 파일’이라 얼버무린, 검찰이 최서원의 소유라고 주장하면서도 오랜 기간 최서원에게 보여주지 않았던 그 태블릿 PC였다.

국회는 어떠한 조사도 없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통과시켰다. 탄핵소추안에 첨부된 참고자료 21개 중 15개가 언론기사였다. 심지어 의원들 대부분이 탄핵소추안의 구체적 내용을 모르고 있었다. 이후 헌법재판소와 법원에서 이어진 절차들은 요식행위에 불과했다.

헌법재판소는 검찰 수사기록을 송부받아 이를 열람한 상태에서 재판을 시작했다. 헌법재판소법이 이를 금지하고 있었고, 대통령 대리인단이 이의신청까지 했으나 개의치 않았다. 검찰이 수개월간 공들여 작성한 조서들을 읽는 순간 강력한 예단이 형성되었음이 분명했다. 하지만 대통령 측에는 이를 반박할 기회조차 제대로 주어지지 않았다.

헌법재판소는 가장 중요한 증거였던 태블릿PC 감정보고서에 대한 송부촉탁 신청을 기각하였고, 김수현 녹음파일에 대한 검증신청 역시 기각했다. 법상 180일간 재판을 할 수 있음에도 선고기한을 3월 13일로 못박고 재판을 진행했다. 수많은 증인들이 이를 기화로 불출석했고, 헌법재판소는 불출석한 증인들을 다시 부를 기회를 주지 않았다. 고영태는 특검과는 은밀히 소통했고, 형사법정에도 출석했지만 헌법재판소에는 출석하지 않았다. 노승일은 헌법재판소에 출석해서 ‘고영태의 소재를 알고 있다. 어제는 저녁도 같이 먹었다’고 했지만 고영태를 불러낼 수 없었다.

게다가 헌법재판소는 국회의 엉성한 탄핵소추안을 재정리해주는 성의를 보였다. 충격적이지만 첫 변론준비기일에 강일원 재판관은 국회의 13개 소추사유를 5개로 재정리해 직접 불러주었다. 이후에도 국회 소추위원단에 소추사유를 재정리할 것을 요구하였고 결국 소추사유는 ‘뇌물죄 등 형사법 위반’을 제외한 4개로 정리되었다. 국회가 제출한 탄핵소추안을 국회의 동의 없이 임의로 변경했던 것이다. 재판관들 사이에 ‘뇌물죄 등 형사법 위반’ 부분에 대해 의견이 대립되었고 헌법위반 사유만으로 판단하기 위해 재정리를 요구했다는 후문이다.

탄핵심판 당시 대통령 대리인단은 안에서는 헌법재판관들과, 밖에서는 특검과 싸우는 이중고를 겪어야 했다. 특검은 대통령을 안종범, 최서원의 공범으로 규정하고 수사를 진행했고, 수사결과를 매일같이 언론에 브리핑했다. 특검의 수사결과는 확정된 사실인양 여과 없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었고, 국민들은 이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였다. 당시 야당 지도자들은 촛불집회에 참석하였고 ‘탄핵이 아니면 혁명밖에 없다’며 국민들을 선동했다. 결국 헌법재판소는 탄핵심판 과정에서 논의조차 되지 않은 ‘헌법수호의지 결여’ 등을 이유로 대통령을 탄핵했다. 놀랍게도 통진당 해산 당시에도 없었던 전원일치 결정이었다.

탄핵 이후의 과정은 더 일방적이었다. 사인으로 돌아간 대통령은 11일 뒤 검찰 조사를 받았고 그로부터 일주일 뒤 구속되었다. 도주할 염려도 증거를 인멸할 우려도 없었지만 영장이 발부되었고, 이후에는 ‘주4회 재판’이라는 초유의 강행군을 강요받았다. 기록은 12만 페이지를 넘어섰지만 7명에 불과한 변호인들에게는 기록을 제대로 검토하고 증인신문을 준비할 시간 자체가 주어지지 않았다.

그래도 청와대는 불안했던지 결정적인 순간마다 재판에 개입했다. 청와대는 2017. 7. 14. 300여종의 캐비닛 문건을 공개했고 이를 법정에 제출했다. 대통령의 추가 구속영장 발부를 하루 앞둔 2017. 10. 12.에는 임종석 비서실장이 직접 세월호 사고일지 조작 브리핑을 했다. 마치 ‘촛불이 유죄일 수 없으니 대통령이 유죄다’라고 부르짖는 듯했다. 다음 날 대통령에 대한 추가 구속영장이 발부되었다. 그렇게 거짓은 산처럼 쌓여갔다.

대통령은 2017. 10. 16. 재판을 거부했고 변호인은 총사퇴했다. 대통령은 법정에서 마지막으로 다음과 같이 심경을 밝혔다. “향후 재판은 재판부의 뜻에 맡기겠습니다. 더 어렵고 힘든 과정을 겪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저를 믿고 지지해주시는 분들이 있고, 언젠가 반드시 진실이 밝혀질 것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법치의 이름을 빌린 정치보복은 저에게서 마침표가 찍어졌으면 합니다. 이 사건의 역사적 멍에와 책임은 제가 지고 가겠습니다. 모든 책임은 저에게 묻고, 저로 인해서 법정에 선 공직자들과 기업인들에게는 관용이 있길 바랍니다.”

검찰과 특별검사가 엄청난 인력을 동원하여 대통령과 최서원 및 관련자들의 계좌를 추적하였지만 대통령이 이들로부터 1원도 수수하지 않았다는 사실만이 밝혀졌을 뿐이다. 하지만 법원은 ‘묵시적 청탁’을 이유로 유죄를 선고했다. 차마 검찰과 특검이 주장한 ‘경제공동체’ 논리를 받아들이지는 않았지만 결과는 징역 33년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