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동 목사의 신앙칼럼] 고난과 영광

Apr 13, 2019 서울장로교회 김재동 원로목사

고난과 영광
기독교를 떠받치는 양대 기둥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입니다. 즉 십자가와 빈 무덤이 기독교의 가장 핵심적인 심볼입니다. 이것을 달리 표현한다면, ‘고난과 영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서양인들은 이 고난과 영광을 말할 때 운(韻)을 맞추어 “No cross, no crown!”이라고 표현하곤 합니다. 고난의 십자가 없이는 영광스러운 부활의 면류관도 없다는 뜻입니다.

주님께서는 십자가의 죽음을 바라보시며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무슨 의미일까요? 십자가에서 고난당하시는 것이 곧 자신이 영광을 얻으시는 길이라는 뜻입니다.
(요한복음 12:27-28) “지금 내 마음이 민망하니 무슨 말을 하리요. 아버지여, 나를 구원하여 이때를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러나 내가 이를 위하여 이때에 왔나이다.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 하시니 이에 하늘에서 소리가 나서 가로되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 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
최후의 만찬석상에서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팔려고 바깥에 나간 후에 예수께서 남아있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13:31) “지금 인자가 영광을 얻었고 하나님도 인자를 인하여 영광을 얻으셨도다.”

이러한 말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주님은 십자가를 통해 당신 자신도 영광을 얻고 하나님 아버지도 영광을 얻으실 것임을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님께 고난과 영광은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한 패키지였으며, 떼려야 뗄 수 없는 하나의 묶음이었습니다. 십자가의 죽음을 앞에 놓고 고뇌와 번민 속에서 기도하셨던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와는 일견 모순돼 보이지만,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는 신성(神性)과 함께 인간의 연약함을 지니신 예수님의 인성(人性)의 발로라고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은 이미 마가복음 10:45에서 당신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을 분명히 선포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사명선언문’(mission statement)입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代贖物)로 주려 함이니라.”

오늘은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신 사건을 기리는 종려주일(Palm Sunday)입니다. 그날 군중들이 승리의 상징인 종려나무 가지를 꺾어 흔들었다고 해서 붙여진 절기입니다. 그리고 종려주일로부터 시작해 한 주간을 고난주간(Passion Week)라고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고난주간을 특별한 한 주간으로 지키고 있습니다. 주님의 고난을 묵상하며 그 분의 고난에 동참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한 주간을 보내게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일까요? 주님이 가신 길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주님이 가신 길이 어떤 길입니까? 주님이 모범적으로 보여주신 길이 많이 있지만, 고난주간과 관련해서는 십자가를 지는 길이 주님이 가신 길입니다. 물론 우리는 주님께서 지신 것과 같은 대속(代贖)의 십자가는 질 수 없습니다. 다만 우리 몫에 태인 십자가를 지고 갈 수 있을 뿐입니다. 마태복음 16:24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한 마디로 자기 자신을 희생하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당신 자신이 한 알의 밀알로 썩어져야 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2: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사실 한 알의 밀알로 썩어지는 것 즉 십자가의 ‘고난’과 ‘영광’이라는 두 단어는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도무지 궁합이 맞지 않는, 마치 물과 기름과도 같은 이질적인 단어들입니다. 그러나 십자가 이후에 주님이 누리실 영광을 생각하면 이 두 단어는 완벽한 케미를 이루는 두 단어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이루 말할 수 없는 고난을 당하셨지만 사흘 만에 부활하시고 이 땅에 40일 동안 계시다가 승천하셔서 지금은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그리고 이 세상 마지막 날에 영광스러운 심판주로 재림하실 것입니다. 그러니 이것은 예수님께도 영광이요 하나님께도 영광이며 우리 모든 인류에게도 영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물론 예수님은 십자가의 고난 자체가 영광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십자가 저 너머에 있을 영광스러운 사건들을 미리 내다보시면서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에게도 고난 이후에 영광이 약속되어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 영광은 고난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엄청난 영광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8:18)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고린도후서 4:17-18)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輕)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重)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
현세에서 우리가 당하는 환난과 장차 우리가 누릴 영광은 비교할 수가 없을 정도로 현격한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고난은 잠시 잠깐이지만 우리가 천국에서 누릴 영광은 영원하며, 이 땅의 고난은 새털처럼 가벼운 것이지만 우리가 누릴 영광은 납덩이처럼 무거운 것이라고 하니 얼마나 위로가 되는 말씀인지 모릅니다.

우리가 어려움을 당할 때 늘 마음에 새겨야 할 것은 “고난을 통해 영광을 얻게 된다.”는 영적인 진리입니다. 고통스러운 수고 없이는 보람찬 수확도 없습니다. ‘No pains, no gains!’ 이 진리를 굳게 붙들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낙심하거나 좌절하지 말고 꿋꿋하게 뚜벅뚜벅 믿음의 길을 걸으며 날마다 매순간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